본문 바로가기
육아/가끔 일기

[+270일] 단유 후 써보는 모유수유의 기록

by 뽀시래기와 두부 2021. 7. 19.

'젖 양'이 내 인생의 화두가 될 줄은 정말 몰랐었다.
출산 전에는 모유수유라는 것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아기를 낳고나니 모든 사람이 모유수유가 좋다고 하고, 나의 젖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 '젖'이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지 아닌지 매일 체크당하는 기분.

노산이고, 체력이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니어서 그런지
엄마랑 이모는 모두 젖이 많았다고 하는데도,
나는 산후조리원에서 젖이 가장 부족한 엄마였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튼튼이 엄마 젖이 부족해서 분유 보충해야해요.'
'산모님은 젖이 부족하시니까~'였다.

그 당시 최대 관심사가 나의 모유 양이었기 때문에,
저 말들은 정말 가슴에 비수로 꽂혔고,
산후조리원에서 매일 '모유 양 늘리는 법' 따위 등을 유튜브로 찾아보곤했다.

집에 와서 만난 산후도우미도
아기가 울기만 하면 '젖양이 부족해서 아기가 배가 고프다'는 말을 매일 했고,
그래서 분유를 자주 먹였었다. 😠
(지금 생각하면 좀 열받는다. 아기가 운다고 늘 배고픈 것은 아니었을텐데)

유튜브에서 분유를 먹이면 그만큼 양이 줄어들어서 결국 완모를 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아기가 부족한 나때문에 배가 고프다니 초보엄마인 나로써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 와중에 젖은 매일 헐거나 부어있거나 하고,
아기가 물고 있으면 온몸이 찌릿찌릿 아파서 발을 동동 구르고...

* 당시의 괴로웠던 기록은 40일경 작성했던 글 참조 ㅋㅋ
https://ok32.tistory.com/102

[+40일쯤] 전쟁같은 모유수유

누군가가 모유수유가 출산보다 힘들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초산에 유도분만이라니, 실패가 유력하게 점쳐지는 ㅋㅋ 게임에서 역시 실패하고, 제왕절개로 분만을 하였는데 마취제를 투여하고

ok32.tistory.com


그렇게 괴롭던 나날을 보내던 중,
나의 모유수유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은 오케타니 마사지였다.

어느날 가슴이 너무 뭉치고 아파 부랴부랴 예약해서 갔던 곳인데,
관리해주시는 원장님께서는 내가 젖양이 부족하지 않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당시 수유 간격이 대략 3시간 전후(생후 50일경)였는데,
그 정도면 훌륭하다면서 토닥여주셨다.

따뜻한 위로와 공감이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했고,
정말 '용기'를 얻어올 수 있었다.
그 때 그 용기를 얻지 못했다면 아마 모유수유를 포기했을 것이다.

모유수유는 '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없이는 어려운 것 같다.



새벽에 깨서 아픈 젖을 물려야 할 때에는 눈물이 났고,
이 아이의 허기짐을 나 아니면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버겁기도 했다.
한 번 젖을 안 물리면 가슴이 너무 아파지니,
괴로워도 나를 위해서 젖을 먹여야하는 아이러니.
유두 상처때문에 온몸이 저릿저릿할 때에도 수유를 지속해야하고,
음식을 먹을 때에도 찾아보고 먹게 되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120일경이었을까,
상처가 났다 아물기를 여러차례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아기가 힘차게 먹어도 아무렇지 않게 되었고,
따로 유축을 하지 않아도 가슴이 아프지 않게 되었다.
거기다가, 젖병을 잔뜩 씻지 않아도 되니 너무 편한 것!

그 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3시간, 3시간 30분, 4시간까지 수유간격이 차츰 벌어지고
아기도 자연스럽게 젖을 먹고,
아기와 내가 정말 한 팀으로 잘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완전 모유수유는 아니었지만
분유는 하루에 한번 먹을까 말까였으니, 거진 완모였다고 생각한다.

아기가 8개월정도가 되자
이제 슬슬 단유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 보다는,
이제는 맥주도 마시고 싶고,
아프면 약도 먹고 싶고,
(그간 엄격히 식이제한을 하진않았지만) 먹을 것도 아무거나 마음껏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로 끊는 것은 나도 아기도 힘들 것 같아서
점차 수유 횟수를 줄여나갔고,
3주간에 걸쳐 서서히 양을 줄여나갔다.

중단한 순서는 밤수 → 낮 → 자기 전 → 아침이었는데,
밤수를 먼저 중단해야 한대서 그렇게 하긴 했지만
정말 쉽지 않았다.

원래도 잠을 잘 자지 않는 아이였는데,
새벽에 깨서 밥먹는게 버릇이 된 것인지 매일 깨서 울어댔고,
처음 며칠동안은 달래다 지쳐서 그냥 젖을 물리곤 했다.

그런데 하루는 왠지 물을 먹여도 될 것 같아서
젖대신 물을 줬더니 그냥 먹고 자는 것이 아닌가.
며칠동안 물 혹은 분유를 줬더니, 밤수를 안한지 며칠만에 갑자기 아기가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렇게 통잠의 기쁨을 출산 8개월만에 느껴보았다.

하지만 아기는 내심 서운했는지,
분리불안이 심해져 일과시간 동안 내가 자신의 시야에서 없어지기만 하면 울어댔고
매 시간 안아줘야했다.
10키로인 아가를 안아주려니 정말 팔과 허리가 남아나지 않았다.

세상에, 모유수유만 힘든게 아니라 단유도 보통 일이 아니었구나...



수유 횟수를 줄여, 아침만 수유를 하던 어느 날,
'아 오늘부터 아침 수유를 해보지 말아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2주 전의 이야기.

정말 양이 많지 않아서였는지,
아기가 잘 먹어줘서였는지
생각보다 단유의 과정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하루 아프고 말았고,
딱히 유축할 필요도 못 느꼈다.
다만 열흘정도 지나니,
그래도 단유 중이라고 젖이 새기 시작해서
마사지를 한번 받고왔더니 아주 가볍다.
(모유수유의 시작과 끝 - 오케타니 마사지 - 감사합니다)

아기의 분리불안도 한 달정도 지나니 좀 사그라든 것 같고,
이렇게 8개월 남짓한 모유수유 시간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다.

아직도 가끔 아기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이고,
아기는 즐거워하며 젖을 찾아 와앙하고 먹는 순간이 그립긴 하지만,

단유를 하고 나니 맥주도 마실 수 있고,
아기도 좀 더 길게 자니 내 컨디션도 좀 나아지고
꽤 괜찮은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다.
아팠던 기억보다는 행복했던 기억만 남아서 그 또한 기쁘다.